본격적으로 차도를 걷게 되었다. 미시령터널 도로는 안타깝게도 자동차 전용도로이다. 사람은 이리로 다녀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도로위의 차들은 80km/h라는 제한속도를 잊은 채 100km/h가 넘도록 달린다.
나의 안전은 내가 지켜야했다. 배낭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먼저 형광연두색 안전조끼. 현장에서 주로 교통사고처리나 신호수를 할 때 입는 패딩 베스트로 양팔이 자유로워 활동성은 물론 폴리에스테르를 풍부하게 함유하여 보온성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인기있던 워너비 아이템이다.
두번째, 빨간 경광등. 버튼을 누르면 반짝반짝 불도 나오는 이 물건은 얼마전 도로 개통할 때 유용하게 쓰인 것으로 이마가 경광봉을 닮아가는 송주상 안전팀장 몰래 꼬불쳐 왔다.
꽃뱀은 주위 색을 닮는 카멜레온과 달리 온통 녹색인 산에서 알록달록 빛깔을 낸다. 이는 몸집이 큰 동물들이 무심코 내딛은 발걸음에 다치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를 대비하여 현란한 색으로 상대에게 경고하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차가 씽씽 다니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형광 연두 조끼와 빨간 경광봉을 연신 흔들어가며 걷게되면 운전자에게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일러주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의 뉴턴이 세번째로 말한 것처럼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 형광은 그 자체로 촌스럽기 때문에 무지하게 눈에 잘 띄는 반면 엄청나게 없어보인다.
이 옷을 명동이나 강남역 같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입게 된다면 나를 모르는 사람은 나를 알아볼 테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모른체 할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오르막인 미시령터널 방향인 오른쪽 길어깨를 따라 걸었다. 차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안보이는 뒤에서 차가 오기 때문에 차소리가 들리면 경광봉을 든 왼손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미시령터널. 잠깐 다리를 쉬고 터널 점검로에 뛰어 올랐다. '3.69km' 까마득하다.
차량이 달리며 내는 소리가 터널 안을 맴돌며 점점 커졌다. 말 그대로 '굉음'. 그대로 참고 가다가는 귀가 먹을 것 같았다. 건강검진 청력검사에서 헤드폰 쓰고 소리가 언제들리나 멀뚱멀뚱 간호사만 바라보다 결국 손 한번 들지 못하고 나오긴 싫었다.
터널을 얼마 가지않아 배낭을 내리고 휴지 뭉치를 찾았다. 다행이 휴지가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어제 잘 때 신발에 습기를 빨아들이라고 넣었던 휴지다. 이제 귓구멍에도 무좀이 생기겠구나.
적당한 크기로 휴지를 잘라 돌돌 말았다. 귀에 넣어보니 쏙 들어간다. 비니를 두르고, 티셔츠 후드를 다시 썼다. 소리는 그래도 크게 들렸지만 아까 보다는 훨씬 나았다.
12시 30분 터널을 통과했다. 터널 출구에는 미시령터널 관리사무소가 있다. 그 앞에 철푸덕 앉아 삼각김밥을 뜯었다. 4개 중 3개를 먹고 있던 중 관리사무소 아저씨가 건물에서 나온다. "어디까지 가요?" '춘천'이라고 말할까 하다, 그랬다간 '별 희안한 놈' 취급 받을까 싶어 백담사까지 간다고 했다. (그래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아저씨께 부탁해 500ml 생수통 두개에 물을 길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 이번에는 내리막이다. 나는 차를 마주하는 방향인 좌측으로 이동해 걸었다. 원래 차도를 걸을 땐 이렇게 좌측으로 걸어야한다. 차량을 마주보며 걸어야 위급상황에 피할 수 있다. 다만 오르막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예외로 차량진행 방향과 같은 우측방향으로 걷는다. 내리막을 내달리는 차량을 피하는 것 보다 뒤에있어 보진 못하지만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차량을 피하는 게 조금 더 낫기 때문이다.
오른손으로 경광봉을 쥐고 차가 다가오면 위아래로 흔들었다. 확장도로 현장 3년 근무하면 특등 신호수 노릇한다. 내 손짓 하나로 차들이 비켜섰고, 천천히 달린다. 마치 홍해처럼 갈라서는 차들을 보니 내가 모세가 된양 의기양양했다. "사랑인걸 사랑인걸 지워봐도 사랑인걸 아무리 비워내도 내 안에는 너만 살아" 걷는 내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백담사 입구 터미널. 정육점과 편의점이 샴쌍둥이처럼 붙어있는 곳에 들어가 초콜릿을 샀다. 황태의 고장을 지나며 황태도 못먹어 봤다는 죄책감에 황태포도 하나 샀다.
편의점 사장님은 내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카메라를 보고는 "필카인가요? X-700이네요?" 하고 알은체를 했다. 정확한 모델명을 알고 있는 그가 반가웠다. 그는 자신이 사진학과 출신이고 지금은 취미로 흑백만 찍는다고 했다.
이제는 필름이 거의 사라졌다. 코닥도 사라질 위기다. 10여년전 태어난 디지털 카메라가 완전히 필름을 대체했다. 필름은 불편하다.
황학동에서 올림푸스 골동품 카메라를 사서 종로3가 필름가게에서 필름을 채워 넣고 서울을 활보하며 사진을 찍었다. 두배로 많이 찍히는 사진기는 36장짜리 필름을 넣으니 72장을 토해냈다.
자동차 전용도로대신 마을길로 들어섰다. 지도를 펼쳐보니 많이 돌아가지 않는 거리였다.
미시령터널 영업사무소 뒤는 윗몸일으키기 기구도 있고 앉아서 쉴 정자도 있었지만 나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운 겨울 뭣하러 밖에 나오겠는가?
나는 윗몸일으키는 벤치에 에어매트를 깔았다. 3cm 밖에 되지 않는 두께가 미덥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어쩔도리없이 그 위에 침낭을 펴고 핫팩 4개를 흔들어 침낭 속 군데군데 배치하고는 내 몸을 그 안에 구겨 넣었다. 신발은 비닐봉지에 싸서 침낭 안에 넣고 같이 잤다. 안그럼 얼어서 내일 아침 신발 신을 때 고생한다.
침낭 속으로 들어간 나는 인어공주처럼 하체는 침낭 속에 두고 상체만으로 그 위에 천막을 덮었다. 천막으로 다리에서 얼굴까지 온 몸을 푹 뒤집어 써서 찬 겨울 바람을 막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낭의 자크를 잠궈 완전한 번데기가 되었다. 이로써 취침준비 완료.
하지만 나의 불길한 예상은 적중했다. 아무래도 얇다고 생각한 애어매트 덕에 새벽에 스무번은 넘게 깨었다. 에어매트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두께가 3cm지만 80킬로그램이 넘는 내가 올라가자 급격하게 압축되어 바닥까지 닿았다. 그때문에 바닥의 찬 기운이 내 몸으로 전도되었다.
어찌나 추운지 핫팩 4개로는 어림도 없었다. 몸을 옆으로 틀고 새우처럼 말아 잠을 잤지만 바닥의 추위는 쉽사리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아침 7시. 침낭에서 나와 부리나케 짐을 챙겼다. 침낭을 딴딴하게 말아 압축백에 넣었고 천막도 잘 개었다. 밉지만 그래도 없으면 안 되기에 에어매트도 바람을 빼고 둘둘 말아 배낭에 넣었다.
날은 아직 어두웠다. 눈은 오지 않는다.
내가 가려는 미시령 옛길은 통제라고 한다. '눈이 얼마나 왔을까? 그래도 갈 수는 있겠지.'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길을 올랐다. 통제소 바리케이트를 우회 통과하여 드디어 옛 미시령길에 들어섰다.
우려와는 달리 눈은 그렇게 많이 쌓이지 않았다. 음지에만 눈이 발목만큼만 차 있었고 양지 쪽은 녹았는지 아스팔트 포장면만 보였다. 게다가 얼마전에 누가 올랐는지 먼저 미시령을 오른 사람의 발자국도 있었다.
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는데, 점점 음지에 쌓인 눈이 많아진다. 산 밑에서 많아봤자 발목까지인 눈이 점점 올라와 정강이에 이르고 정강이를 지나쳐 무릎까지 빠진다. 이젠 음지, 양지 할 것 없이 눈 밭이다. 난 실미도 요원이라도 된 양 무릎까지 찬 눈밭에서 첨벙첨벙 뛰어야했다.
눈에 발이 빠지면 신발과 발목사이 틈으로 눈이 들어간다. 그 눈은 또 신발 면을 타고 발바닥으로 떨어지게 되고 양말이 젖어 발이 차갑게 된다. 그럴때면 마치 500원짜리 동전 앞면의 고고한 학처럼 한쪽다리를 들고 신발을 벗어 신발속에 들어간 눈과 양말에 붙어있는 눈을 털어야만 했다. 허나 그게 한두번인가?
나는 되도록 눈을 밟지 않으려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뒤쫓았다. 그런데 이 사람, 축지법을 쓰는지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결국 첨벙첨벙 눈사이를 헤엄치다가 그래도 안되겠어 길가에 점선처럼 올라와 있는 노란 경계석을 밟고 외줄타기 광대마냥 양팔을 좌우로 벌려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러다 경계석이 없는 곳은 다시 첨벙대야 했다.
미시령터널 입구쯤이 되자 눈은 더 깊어졌다.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찼다. 신발안에 들어온 눈을 터는 것은 아까부터 포기했다. 길 가 옹벽 위에 낙석방지울타리가 있었다. 난 옹벽 위에 올라 스파이더맨처럼 낙석방지울타리를 타고 옆으로 이동했다. 그래봐야 고작 10m. 울타리는 거기서 끝이났다.
눈은 교통표지판까지 쌓여, 삼각형 표시만 눈위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왕복 2차로 옛미시령 길은 온통 하얀 눈밭이다. 원망스런 눈으로 미시령을 쳐다보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만 분다. 한 5분을 그렇게 서 있었다. 바람도 5분을 불었나 싶었을 때, 나는 외쳤다. 그것도 크게 "빠꾸!"
히말라야를 코앞에서 포기해야 했던 산악인들의 허탈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을 결정하자 문득 배가 고팠다. 어제 편의점에서 산 김밥을 꺼냈다. 포장지에는 '전자렌지에 데워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라고 써 있었지만 단무지마저 얼어버린 김밥을 앞니로 뎅강 잘라 우적우적 씹었다. '미시령아, 언젠간 넘고 말테다.'
나는 다시 옹벽 위의 울타리를 잡고 거미처럼 걸어야했고, 무릎까지 차는 눈을 첨벙거리며 뛰다, 노란 경계석을 다시 타고 넘어야 했다.
'결국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선물 같던 휴가.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휴가였는데, 하늘에서 떨어진 눈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다. 하늘의 뜻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괘씸한 마음을 가지고 내려오다 미끄러지길 수어번, 아프기는 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부끄럽진 않다.
그러다 순간 길 아래 벼랑을 보니 아래에 미시령터널로 향하는 도로가 있다. '그래, 저 길을 걷는거다' 좀 위험하긴 하지만(많이 위험함) 걸어갈 수는 있다.
벼랑에는 철책이 있었고, 그것을 타고 내려가다 산마루측구 옆으로 가면 잘하면 도로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철책을 잡고 내려는 갔지만 또 거기서 도로 바닥까진 10미터나 내려가야 했다. 땅바닥에 앉아 스물스물 내려가려는데, 세 걸음도 떼지 못하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가파라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봅슬레이를 타듯 도로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 같았다.
아래로 향하던 엉덩이를 멈추고, 뒤로 가려는데 배낭이 걸려서 뒤로 가질 않는다. 순간 식은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이러다 망부석처럼 돌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울산바위처럼 설악산에 놀러왔다 주저앉은 전설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찌어찌 몸을 옆으로 틀어 응용포복을 감행했다. 왼 팔꿈치를 앞으로 내밀고, 오른 다리로는 비탈을 발로 찼다. 몇번의 꿈틀거림 끝에 간신히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래서 남자는 군대를 가야하나보다. 응급상황에서도 몸에 밴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정신!
다시 옛 미시령길로 올라와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한번 더 실패를 한 후 한참을 내려와 경사가 완만한 곳에 이르러 마침내 세번째 시도 끝에 미시령터널 도로로 내려올 수 있었다.
집수정 스틸그레이팅위에 앉아 젖은 양말을 갈아 신었다. 그 손으로 산위에서 먹다 남은 김밥을 집어 먹었다. 다행히 양말 맛은 안 났다.
속초터미널에 도착하니 눈이 내린다.
터미널 앞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켰다. 공기밥 하나 더 추가해서 두공기를 먹었더니 몸도 마음도 든든하다. 밖을 바라보니 눈발이 더 굵어졌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에 필름을 넣었다. 필름을 장전하고 셔터를 눌렀다. 안 눌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셔터가 개폐되지 않는다. 베터리가 나간 모양이다. 'LR44'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베터리는 식당 옆 편의점에는 없다. 걷다가 다른 편의점에 들러봐야겠다.
눈은 여전히 내린다. 눈발이 제법 굵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최의현 사촌동생은 오늘 오후 영동지방에 눈이 내린다고 했다. '틀려라 틀려라 틀려라' 하고 내심 기원했지만 하늘은 내 갸륵한 정성을 듣지 않고 정말 눈을 뿌렸다. 그것도 함박눈으로
하늘에서 비와 눈을 관장하는 신은 깔깔깔 침을 튀어가며 웃는 모양이다. 그 침이 땅으로 떨어져 저처럼 하얀 눈으로 되었겠다.
매섭게 내린 눈은 길에 쌓였고, 얼마지 않아 트럭앞에 삽날을 단 차량이 도로를 순회하며 쌓인 눈을 길가로 몰아냈다.
맨 먼저 속초의 동쪽 '영금정'을 가야겠다. 미시령과는 반대방향이지만 속초까지 와서 바다를 못 보고 가는 건 말이 안된다. 1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아 걸어서 갈 생각이다.
손에 지도를 들었다. 눈이 지도에 떨어져 지도가 젖는다. 지도를 젖지 않게 하려 품안에 넣었다.
배낭을 맨 허리춤이 불편하다. 옷을 고쳐 입으러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 급한 마음에 들어가면서 허리에 맨 배낭끈을 풀었다. '사부작' 무슨 소리가 들린다. 배낭을 내리고 장갑을 벗은 손으로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배낭을 매고, 지도를 보려는데 지도가 없다.
외투 주머니를 뒤져 찾아봤다. 없다. 바지 밑으로 내려갔나 싶어 바지 밑단도 찾아봤다. 역시 없다. 배낭은 열지 않았으니 배낭안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지도가 추워 스스로 기어들어갔을 수도 있겠다 싶어 찾아봤지만 없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미련이 남아 몸을 다시 더듬거리며 수색하던중 번쩍하고 아까 났던 소리가 생각났다.
'사부작' 종이가 땅에 떨어지고 바람에 날아가는 소리. 혹시 바닥에 떨어져 주인을 애타게 찾고있을까싶어 왔던 길을 두세번 왔다갔다하며 찾아봤지만 여전히 없다. 세찬 눈보라에 지도는 아마 저 사거리 밖으로 사라졌으리라.
일단 슬픔은 뒤로하고 영금정에 갔다. 영금정에서 바라본 동해는 겨울바람에 세차게 일렁거렸다. 내 결심도 저 파도만큼 일렁거린다.
지도가 없다. 목표가 사라졌다. 아니 목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방법을 잃었다고 해야겠다. 한참을 생각하니 아까 터미널 옆에서 봤던 PC방이 떠올랐다. 거기서 지도를 다시 출력해야지 마음 먹었다.
걸어걸어 PC방이 있는 빌딩 2층 계단을 올랐다. '휴무' 나를 뒤따라 PC방을 가려던 초딩들도 그 '휴무'란 무심한 글자앞에 한숨을 내쉬고 다시 1층으로 사라졌다.
속초에 PC방이 어디 한개 밖에 없겠느냐? 다시 미시령 방향으로 걷는 거다! 과연 한참을 걸으니 저쪽편에 PC방 간판이 보인다. 계단도 오를 필요도 없이 1층에 있다. 1층에 PC방이 있다니, 마치 어릴 적 오락실에 들어가던 즐거운 착각에 빠져있던 나는 아르바이트 생에게 소리쳤다. "여기 프린트 되나요?"
컵라면에 나무젓가락을 올려놓고 휴대폰으로 카톡을 하던 그 아르바이트생은 강원도 어투로 "안되는데요" 라고 답했다. 나는 안된다는 말에 괘념치 않고(이미 그건 춘천에서 여러번 들었기에) "그럼 프린트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좀전에 카메라 건전지와 삼각김밥을 샀던 훼미리마트 옆 모닝글로리를 가리키며 거기서 프린트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안 될 수도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어서 혹시 다른 PC방이 이 근방에 있는지 물었다.
그는 여기엔 없고 멀리 있다며 갈 길 바쁜 나를 걱정시켰다. 하는 수 없이 PC방 한자리를 차지하고 네이버 지도에 속초를 검색했다. 프린트 스크린키와 사진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갈 예상 루트를 이동시켜가며 차례로 사진파일로 변환시켰다. '01'에서 '10'까지 번호를 매겨가며 저장하고 메일쓰기를 통해 내 메일로 전송했다.
이젠 '모닝글로리' 중년의 여자 사장님은 우아하게 가요를 듣고 있었다. 난 프린트를 부탁했고 잉크가 없어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말을 한 아주머니의 예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A4사이즈로 지도를 뽑아냈다.
이제 지도도 다시 찾았겠다 더이상 악운은 없다.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설악 한화리조트를 지날 때 까진 그랬다. 문득 왼쪽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2시 45분' 조금 이상하다. 초침이 없는 시계라 제대로 작동되는지 금방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어 시각을 보았다. '4시 10분'
시계를 자세히 보니 용두가 송두리째 빠져있다. 아까 지도를 잃어버렸을 때 배낭을 매다 배낭끈이 용두에 걸렸었다. 그 때 힘으로 배낭을 매었는데 아마 그것이 시계가 고장난 원인일 것이다.
기온도 알려주고, 기압도 알려주고, 동서남북도 알려주는데다 방수도 되고, 새벽에 알람으로 깨워도 주고, 결정적으로 시침과 분침에 형광물질이 있어 깜깜한 밤에도 시각을 알아보는데 문제가 없는 시계가 멈췄다.
곧장 손목에서 빼낼까 했지만 저편에서 오는 외제차에 탄 아저씨가 나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는 듯해 고장난 손목시계를 흘끔보며 시각을 확인하는 척 했다. 손목시계가 있는 거지는 없겠지 하는 마음에 그 아저씨는 측은한 마음을 거두었으리라. 온전히 내 생각일 수 있겠지만
사거리를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한화콘도에는 사람이 많았다. 휴가를 내고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며 '나도 가족들이랑 놀러와야지'하는 상념에 빠지며 앞으로 계속 갔다.
그런데 길이 어째 좀 이상하다. 왠지 리조트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끝까지 가보면 길이 나올거야' 긍정적인 마음으로 걸었지만 정작 끝에 나온 것은 막다른 길이다. 다시 방향을 돌렸다. 그 거리가 1km 가량이다. 난 2km를 헛걸음해 원래 가려했던 길에 다다랐다. 날은 어둑해지고 눈은 계속 내린다.
여기는 미시령터널입구 휴게소. 정확히는 장애인 화장실 변좌 위에 앉아있다. 하의는 탈의하지 않은 상황이니 쓸 데 없는 상상은 말라. 옆에는 수도관이 얼어서 터지지 말라고 라디에이터를 켜 놓았다. 그 위에 내 오른쪽 운동화가 올라와 있다. 아까부터 땀에 젖은 티셔츠, 양말, 왼쪽 운동화를 차례로 올려놓다 이제가 마지막이다. 그것들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수첩에 글을 쓰고 있다. 여기서 쓴 글이 나중에 한편의 여행기로 바뀌리라.
어제 저녁 일기예보를 보며 혹시 몰라 '우의'를 준비했다. '우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깥의 물은 철저히 차단했다. 하지만 몸안에서 발생된 습기도 빠져나갈 구멍 역시 막았다. 말 그대로 '물 샐 틈 없는 수비' 덕분에 티셔츠는 땀으로 홀랑 젖었고 바지도 땀이 차서 허벅지에 달라 붙는다. 그래도 내 걸음은 고어택스를 입은 양 당당했다.
한산한 휴게소의 장애인 화장실은 그런대로 살기 좋다. 여기서 잠을 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저 눈발이 흩날리는 바깥보다야 낫지. 개똥밭에 굴러도 실내가 좋은 건 '1박 2일'뿐만은 아니지 싶다.
저녁식사는 휴게소 식당에서 소내장탕을 먹었다. 그냥 우거지국 같다. 이제 대충 옷이 말랐다.
7시 40분 할 일은 다 했으니 밖으로 나가야지. 아까 밥먹기 전에 자리를 봐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이로써 에어매트 사느라 춘천에서 우왕자왕하고, 지도를 잃어버리고, 시계도 고장나고, 눈까지 내리는데 잘못된 길 갔다가 돌아왔던 여행 첫째날이 미시령 너머로 저물었다.
첫째날,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속초 영금정 ~ 미시령터널 춘천방향 영업소 걸은 거리 14km
새벽 2시 30분. 작은 창문 앞에서 담요를 무릎에 올리고 앉아있는 모텔 안주인은 나른한 표정으로 몇이냐고 물었다. 나는 혼자라고 대답했지만 그는 내 손에 칫솔 두개를 얹어주었다. 문을 따고 들어간 403호실은 커다란 LCD TV가 있어 그럴싸했지만 싸늘했다. 하마터면 침낭을 꺼낼 뻔 했다. 과연 추위의 고장 강원도의 도청소재지다.
잠바를 벗지 않고 침대속으로 파고 들었다. 습관적으로 TV리모콘을 켰다. 정규방송은 애국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케이블티비에는 케케묵어 화질까지 흐릿한 90년대 드라마가, 스포츠 채널에선 우커송 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이 나왔다. 류현진이 땀을 연신 흘리고 있는 걸로 보아 곧 정대현이 나올 참인가보다.
무표정하게 채널 한바퀴를 탐색하는 도중 살색이 화면을 가득채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게 아닌가. 화면 좌상단을 바라보니 이렇게 써있다. 'S채널' 얼마나 반가운 이름인가. 20사단 시절 위수지역인 이천으로 외박을 나와 다른 곳보다 무려 5천원이나 비싼 '발렌타인' 모텔방에서 동료들과 함께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양 흐르는 침을 후루룩 삼키며 바라봤던 채널, 그 이름도 야시꾸리한 'S채널'이다.
'S채널'은 업데이트를 포기했는지, 아니면 지금이 '추억의 명화'를 방송하는 시간대라 그런건지 2000년대 초반에 만들었음직한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반가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쉽지만 전원버튼을 눌렀다. 계속 봤다간 내일 출발도 뭐고 없겠다 싶었다. 모든 힘을 오롯이 걷는 데 쏟아야 할테니.
9시 20분 속초행 버스를 타려했다. 뒤척뒤척 일어나서 이를 닦으니 7시 50분. 차에서 배낭을 들고 와서 짐을 하나씩 꺼내었다. 침낭, 갈아입을 옷, 핫패드, 카메라, 필름, 천막, 에어펌프 등등 비장한 각오와 그에 어울리는 다부진 표정으로 준비물을 굽어보았다. 그런데 에어매트가 없다. 어제 분명히 집에서 따로 챙겼는데, 챙기기만 하고 배낭에 넣질 않았나 보다.
에어매트가 뭔데 이렇게 긴 글을 할애하며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겨울에 한댓잠을 자려면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아줄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리털 침낭이 1박2일에 나오는 것처럼 두툼해서 차가운 바닥과 격리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내 침낭은 얼어죽지 않을 정도의 오리털만 들어있을 뿐이다. 애어매트는 이중창의 원리처럼 바닥과 몸 사이에 공기층을 두어 바닥의 찬 기운이 누워있는 몸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단열기능을 한다. 이게 없다면 가뜩이나 부실한 외박용품 탓에 노숙은 물건너가게된다. 그렇다면 기껏 구상한 속초~춘천 노숙여행 역시 실패가 된다.
'이럴 순 없지. 집에 갔다 올까?' 200킬로미터를 왕복해야하니 그렇다면 오늘 속초에서 걷는 것은 포기해야한다. 곧 휴가 하루를 버리는 일이다.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켜고 지도어플로 '등산'을 검색했다. 그러나 등산용품 전문점은 '노스페이스', '컬럼비아', '블랙야크' 등 의류전문점만 알려준다. 이곳에는 에어매트가 있을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검색한 것은 '낚시'다. 등산이나 낚시나 겨울에 하려면 추위를 진득하니 버티어야하는 공통점이 있다.
아홉시가 아직 되질 않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몇 번이나 다이얼을 헛으로 돌린 후에 잠긴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대답하는 곳이 있으면 반가운 마음에 '에어매트' 있느냐고 문의해보지만 받으면 족족 없다고들 한다. "그럼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안타까운 마음에 물어보니 한 사장님이 말한다. "양키시장(춘천 중앙시장)에 가봐요."
네비게이션을 검색하여 '중앙시장'을 입력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중앙시장' 중 거리가 가장 가까운 죽림동 중앙시장을 검지로 눌렀다. '띠리링' 우렁찬 소리와 함께 시작된 네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300미터 앞에서 좌회전, 교차점에서 직진, 회전주의 구간을 지나 우회전을 연거퍼 하였더니 중앙시장이었다.
시장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등산복 매장엘 갔다. 사장님께 '에어매트'를 물어보니 역시 여기는 없다고 한다. 다시한번 '있을만한 곳'을 간곡히 여쭈니 '운교사거리'를 말씀하신다. 고맙다고 넙쭉 인사를 드리고 다시 주차장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타려했던 버스 출발시각은 훌쩍넘었고 마음은 급해서 주차장에서 차를 급히 빼느라 에이치빔에 옆구리를 긁어먹었다. '에라 모르겠다' '운교사거리'를 거의 다 왔으니 준비하시라는 네비게이션의 말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니 여기는 맨처음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노스페이스', '컬럼비아', '블랙야크' 등 등산의류 전문점이 있는 곳이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 중 '노스페이스'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에어매트란 물음에 '잠시만요'를 말하더니 이윽고 '있으니 얼른 오라'는 말을 해주었다.
에어매트는 펌프 없이 자동으로 공기가 충전되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두께가 3cm밖에 되질 않아 과연 단열효과가 충분할까 고개를 갸웃했지만 지금 내 형편은 이거라도 감지덕지다.
플라스틱 펜을 들어 '우종환'이라고 적으니 '지지직'하고 VAT포함 5만원짜리 영수증이 출력해 나온다. 에어매트와 덤으로 받은 빨강 비니를 차에 싣고 춘천 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렸다.
10시 40분. 터미널 앞 유료주차장은 한산했고, 그 옆 공터엔 주차한 차들이 빼곡했다. 그 사이사이를 기웃거리다 차량 한 대 들어갈 만한 자리에 넙죽 내 차를 끼워넣었다. 배낭을 꺼내어 새로 산 에어매트를 넣었다. 에어펌프는 필요없으니 뺐다. 필름이 들어가는 일안리플렉스카메라를 목에 걸고, 휴대용카메라(로모, 이것도 필름)를 배낭 맨 위에 넣었다.
구입한지 보름밖에 되지않은 최신식 4G 스마트폰은 가져가지 않고 차량 콘솔박스에 두었다. 대신 아직도 해지하지 않아 방통위를 비롯한 KT직원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는 '018'로 시작되는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지도 검색도 되고 유용한 정보도 얻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지만 (게다가 무료통화도 200분 넘게 남고, 인터넷 용량도 엄청나게 남아있다) 지도를 펼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러다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아날로그 여행에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똑똑했다. 그리고 똑똑하고 큰 몸집만큼 베터리를 과소비하는 스마트폰은 잦은 충전을 해야하기에 길바닥 여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 비해 2G 휴대폰은 충전을 하지 않아도 2~3일은 간다.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카메라를 택한 것도 베터리 충전의 불편함 때문이다.
속초행 버스는 몸을 부르르 떨며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큰 배낭을 맨 나는 주위의 신기하듯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뒤뚱뒤뚱 좁은 버스통로를 걷다 중간쯤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10시 50분 '치지칙' 버스 앞문이 닫긴다.
지인의 결혼이나 부고 소식, 파격적인 이자로 꾸어준다는 직장인 신용대출, 24개월만 꾸준히 쓸 것을 약속하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휴대폰을 준다는 글 틈바구니에서 당신은 이 글을 클릭했으리라.
이제부터는 '142534'란 숫자로 불리는 한 직원이 올 겨울 떠났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속초와 춘천. 어쩌면 대단치도 않은 곳이다. 그러나 별다를 곳 없는 그곳에 대해 '자유게시판'이란 이름에 걸맞게 마음껏 자유롭게 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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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며칠동안 감지않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긁는다. 고속도로 2차선에서 느릿느릿 가고있는 카고트럭을 뒤따라 하얀색 승용차가 역시 느릿하게 가고 있다. 다른 차들은 그런 우리가 답답한지 나와 또 내 앞의 트럭을 추월하며 손살같이 튀어나가고 있다.
몇 시간전만 하더라도 용을 쓰고 걸어야 한시간에 4~5km가 고작인데 지금은 살며시 오른발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시속 100km를 가뿐히 넘는다. 그러나 난 굳이 빨리갈 필요도,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FM 98.9 메가 헤르츠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선곡한 팝송을 내보낸다. 죄다 영어로 이루어진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미천한 영어실력인 까닭에 외국가수의 성대를 울리며 에어컨가스처럼 분출된 단어는 다른 악기들처럼 그저 또하나의 소리로만 들린다. 그 덕에 노래가사에 방해받지 않고 생각에 빠진다.
2006년 1월은 완연한 겨울이었다. 나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걸었다. 하루종일 꼬박 걷고, 한댓잠을 자며 열흘을 걸으니 서울이었다.
왜? 대학생활이 지나기 전에 남들이 선뜻 하지 못하는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이 세상에 딸랑거리는 그 무엇 두쪽만 차고 나온 탓에 돈은 없고, 시간만 많은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 불현듯 걷는 게 떠올랐을 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수단 그러나 가장 오래된 교통수단, 걷기를 통해 빠름만을 숭배하는 현대사회에 촌철살인의 깨우침을 주고자 위대한 영도자 우종환 님께서 친히 천리를 걸으시었다.'
이따위 겉멋과 허세 가득한 미사여구로 나의 여행을 포장하기도 수월할 것 같았다. 물론 열라 빡셈을 경험한 후의 자화자찬이니 어느정도 먹어주리라.
그러나 막상 출발일이 다가오니 후회의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다. '걷기가 특이한 거 말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야 책을 읽으면서, 또 산책을 하면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렇게까지 몸을 혹사한다고 없던 깨우침이 일어날까? 설령 그런 경험을 통해 뭔가를 느낀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뀔까?'
수많은 의심들이 나를 가로 막았다. 하지만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무서워 도망가는 것 같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무서울까? 추운 날씨, 혹시 모를 교통사고, 무엇보다 많이 걸어 아플 다리가 겁났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 해 시도조차 하지않는다는 게 더 싫었다.
'한번 걸어볼까?' 했던 첫 마음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하고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안 죽으면 되지. 그냥 가자!' 하기야 그 당시 난 무엇보다 대책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6년이 흘렀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나는 분명 여전히 나인데, 어쩌면 6년 전의 내가 아니었다.
과거의 경험들은 박제된 채 싸이월드 사진첩에 방치되어 있고, 간혹 그시절 친구들을 만날 때나 슬며시 나왔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들을 낄낄대며 회상했다. "내가 왕년에는 어마어마 했거든." 점점 파고다 공원의 허풍 센 할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다.
2011년 12월 27일 회의시간 거짓말처럼 휴가가 주어졌다. 그런데 휴가가 이틀 후부터라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날 지 갑작스레 정할 수가 없었다. 이러면 백이면 백, 휴가내내 고향 집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만 자다 오지 싶었다.
'안 되겠다. 걷자. 다시 모험이다.' 목표는 강원도 속초에서 춘천까지. 대강 네이버 지도로 거리를 재어보니 4박 5일에 딱 맞았다. 잘 하면 나흘만에도 도착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잠을 밖에서 자는 것은 당연하고.
12월 28일 일과가 끝나고 밥을 먹고 청주 집으로 갔다. 부랴부랴 6년전 도보여행을 했을 때 사용한 60리터 용량의 배낭과 중국산 12만원짜리 오리털 침낭을 찾았다. 그리고 얇은 패딩점퍼, 여벌의 상하의, 속옷과 양말, 렌즈안에 곰팡이가 활짝 핀 필름카메라를 배낭에 넣었다. 배낭을 찾는 나를 이상히 여기는 어머니에게는 휴가인 것을 숨기고 그냥 새해 일출보러 친구랑 산에 간다고 둘러댔다.
그런데 지도와 필름이 없다. 알고보니 대전 사무실에서 가져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청주에서 대전으로 갔다. 안타깝게도 대전은 청주보다 남쪽이고, 춘천을 가려면 다시 청주를 지나야한다. 그러나 어쩌랴. 눈물을 머금고 대전으로 갈 수 밖에. 요새는 필름은 안 파니까.
밤 11시가 다 된 시각, 대전사무실에 다시 도착했다. 필름10통과 A3사이즈로 출력한 네이버지도를 챙겼다. 그리고 몇가지 물품을 꾸리고 승용차에 밀어넣었다. 이로서 준비는 끝.
이제 진짜 출발이다. 목적지는 춘천. 춘천에서 하루 자고 속초로 가야지하고 마음을 먹었다.
승용차의 시동을 켜고 엑셀을 밟았다. 겨울 밤 하얀색 자동차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북진한다. 안에는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책없는 서른살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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